[전시] 예술가 ‘피카소’의 명성, 드디어 전시로도 그 명성을 이어받다. ‘피카소展’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기사입력 2021.06.08 18:25 조회수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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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학살 01.jpg
한국 전시를 찾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년)

 

 

 

[서울문화인]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삶과 예술에 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게르니카(1937)는 자신의 조국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2차 대전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고발한 <시체구덩이>(1944-46),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과 함께 피카소 3대 반전 작품이라 일컫는다.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려낸 폭이 2m에 달하는 한국에서의 학살70년 만에 한국을 찾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 중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국내에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기에 관심이 높아 국내 전시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실패한 작품으로 2021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성사되어 한국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 합판에 유화ⓒ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jpg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1951, 합판에 유화ⓒ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그러나 70세의 피카소가 이 작품의 소재로 삼은 배경이나 동기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학살자로 묘사된 인물들이 미군이라는 점이다. 혹자들은 한국전쟁 동안 발생한 19507월에 있었던 충북 노근리 사건이나 10월로 추정되는 황해도 신천군 사건이 소재가 되었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이 두 사건은 이 작품이 제작된(1951118일 완성, 그해 5월 파리에서 열린 <5월 살롱>전에서 첫 공개) 후인 1952년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 왜 학살자가 미군이라 판단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이 작품이 완성될 당시 피카소는 프랑스 공산당원(1944년 가입)이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프랑스가 유엔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파병을 결정한 프랑스정부에 반발하며, 반정부활동과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눈여겨 볼만한 사실은 공산당 기관지 위마테니6.25전쟁은 북한이 자행한 남침이 아니라 미국의 지원을 얻은 남한의 북침이라는 소련의 주장을 담은 한국에서 워싱턴의 꼭두각시들에 의한 심각한 전쟁도발”(626일자)이라는 제목을 붙여 한국전쟁 발발 첫 소식을 전한다. 이후 미국의 폭격으로 북쪽의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는 논조의 기사를 쏟아내었다. 818일자 논평에서는 학살자라는 제목 하에 수많은 아이들과 아낙네들이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희생당하고 있음을 비난하는 기사까지 내보내었다. 이런 쏟아지는 기사를 피카소는 다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프랑스 공산당은 게르니카시체구덩이처럼 피카소가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어떤 행동을 해주기를 바라고 무언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 예측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공개되었을 때 프랑스 공산당에서는 등장하는 군인들이 미군임을 확연하게 표현되지 않음에 대해 실망했으며, 미국과 우방의 시각에서는 모호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데올로기를 선동하는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더군다나 당시 미국에서는 피카소를 현존하는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하고 있었으며, 그의 걸작 <게르니카>가 뉴욕현대미술관에 보관하고 있던 상황이라 평화주의자로 여겼던 피카소가 공산당의 선전에 뛰어든 것에 대해 충격과 함께 심한 배신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전쟁의 모습을 표현할 때 나는 오로지 잔혹성만을 생각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의 군모와 군복 같은 것들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1953125, 1952년 발레로스의 예배당에 그린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터뷰에서)라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앞서 얘기했듯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에서도 높이 평가 받는 작품은 아니었다. 아마도 공산주의의 선전적 요소가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수 있지만 이 작품의 구도가 피카소가 존경하던 스페인 낭만주의 회화의 대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와 프랑스 인상주의 선구자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작품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먼저 1814년 제작된 고야의 <180853El Tre do Mayo en 1808>(프라도미술관 소장)1808년부터 1814년까지 이베리아반도에서 일어난 나폴레옹 군대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동맹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프랑스 군이 180853일 마드리드의 프란시페 피오 언덕에서 봉기한 시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학살행위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권력자의 총칼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양민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고발하고 있는 작품으로 폭이 3.5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이다.

 

이어 에두아르 마네는 고야의 작품을 바탕으로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8-69, 만하임 쿤스트할레 소장)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 3세가 임명한 멕시코의 황제 막시밀리안이 멕시코 군에게 처형당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으로 양민 학살이라는 고야의 작품과 비극의 주체는 다르지만 고야의 구도를 본떠서 제작했다는 점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세 작품 모두 학살의 주최자를 오른쪽에 희생자를 왼쪽에 배치하는 동일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비교하여 관람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국에서의 학살의 모티브가 된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마네) 1868-69, 1808년 5월 3일(고야) 1814.jpg
한국에서의 학살의 모티브가 된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마네) 1868-69, 1808년 5월 3일(고야) 1814

 

 

 

미술의 역사를 바꾼 세기의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회고전

한국에서의 학살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라 도입부에 소개를 했지만 이번 전시는 그동안 소개된 피카소전과는 급이 다르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피카소라는 20세기 최고의 화가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전시이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의 걸작 110여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피카소 진품 명화전으로 서양미술의 역사를 바꾼 입체주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부터 말년의 작품까지 70년에 걸친 피카소 예술의 흐름을 연대기적 테마를 통해 볼 수 있는 전시이다. 서양미술사의 독보적 예술가 피카소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그의 신화 속으로 여행하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파리 소재의 국립피카소미술관(Musée national Picasso-Paris)은 단일작가 미술관으로는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독보적인 미술관으로 피카소 사망 후 유족에게 부과된 막대한 상속세를 대신해서 프랑스 정부에 기증한 작품들을 모아 1985년에 문을 열었으며, 피카소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화, 조각, 판화, 데생, 도자기, 자료 등 5천 여 점에 달하는 피카소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익숙한 유화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다양한 재능을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전시로 조각의 걸작으로 널리 알려진 염소 La Chèvre, 다양한 채색의 도자기, 그리고 7년에 걸쳐 완성 볼라르 연작 Suite Vollard과 함께 그의 창작을 총망라하고 있다.

 

전시는 먼저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청년 피카소의 고독을 그린 청색시대를 시작으로 미술사의 혁명을 일으킨 입체주의시대에 이르기까지 격정적 시기의 작품들을 통해 피카소가 피카소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이후 입체주의를 마감하고 신고전주의 풍의 구상회화로 복귀와 초현실주의 경향의 몽환적 작품들이 등장하는 피카소예술의 변화의 시기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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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읽기, 1921 01.jpg
편지 읽기, 1921

 

 

 

볼라르 연작 Suite Vollard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는 데생 실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어진 공간에는 뛰어난 데생 실력과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볼라르 연작이 관객을 맞이한다. 볼라르 연작은 1930년에서 1937년까지 제작된 100점의 에칭 판화로 작품을 주문한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이름을 따서 <볼라르 연작 Suite Vollard>이라 불린다. 볼라르는 1934년 주문한 판화는 피카소에게 대금을 지불하는 대신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폴 세잔의 작품을 주었다고 한다. ‘볼라르 연작은 렘브란트의 환상이 깃들어 있는 조각가의 작업실, 싸우는 미노타우로스, 눈이 먼 미노타우로스라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은 볼라르의 초상이 3점 포함되어 있다.

 

 

볼라르 연작, 1937 2.jpg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 New Perspective, Ceramics

최근 고 이건희 기증품 중에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이 있음을 확인한 바가 있는데 이어진 공간은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이어진다. 1948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피카소는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이자 전통적으로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발로리스에 정착한다. 이곳에서 피카소는 도자기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회화, 조각의 정통예술을 넘어 창작의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다. 이 섹션은 피카소의 예술이 도자분야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부엉이 세 마리가 있는 작은 고딕 술병, 1953.jpg

 

 

도자기 전시장 2.jpg

 

 


피카소와 여인 Picasso and Women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다.”라고 말한 피카소에게 예술은 그가 사랑한 여인들과 분리해서 논할 수가 없다. 특히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1907)은 여성의 신체를 심하게 왜곡시키고 얼굴을 가면처럼 그려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서양미술 400년의 전통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며 회화 역사의 대혁명을 일으킨 걸작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입체파시대를 함께 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로부터 젊은 나이에 병사한 에바 구엘, 첫 부인 올가 코클로바, 청순하고 어린 마리 테레즈 발테르, 게르니카의 산 증인이었던 도라 마르, 피카소의 두 자녀를 낳고 그를 떠난 프랑수와즈 질로,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자클린 로크에 이르기까지, 시대(1930~40년 대)마다 등장하는 여인들로 그의 예술을 조명하고 있다.

 

 

파카소와 여인, 전시장 2.jpg

 

 

파카소와 여인, 전시장 1.jpg

 

 

연설가, 청동과 돌, 1933-34.jpg

 

 

이어진 섹션에는 피카소의 조각 작품 중 가장 걸작이라 일컫는 <염소>(1950)를 비롯한 조각 작품과 70년 만의 역사적인 한국을 찾은 한국에서의 학살, 철판을 절단하고 구부려 만든 조각 작품 <두 팔을 벌린 여인>(1961),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1961)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염소, 1950.jpg
염소, 1950

 

 

염소, 1950,화판에 유화와 목탄.jpg
염소, 1950,화판에 유화와 목탄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1961.jpg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1961

 

 

 

‘20세기 미술은 피카소에 의해 시작되었고, 피카소의 세기였으며 피카소를 위한 시대였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수많은 대가 중에서 피카소만큼 찬란한 업적과 명성을 남긴 작가는 흔치 않다. 이번 전시가 왜 많은 관심 속에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또한 피카소가 ‘미술의 역사를 바꾼 세기의 천재 화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 조금이 나마 확인해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전시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는 8월 29일까지 진행된다. [허중학 기자]

 

 


[허중학 기자 ost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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